[ 한국미디어뉴스 이원영 기자 ] 장애인의 건강권을 공중보건 체계 안에서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이 한자리에서 논의되었다. 12월 4일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국회의원, 국민의힘 김예지 국회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장애포용적 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고, 현행 보건의료 시스템이 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장애인의 건강을 단순한 치료·재활의 문제가 아닌 공중보건 차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정책 설계와 전달체계 전 과정에서 장애인의 참여와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특히 논의에서는 그동안의 보건의료 정책이 장애인을 ‘특수·예외’로 분류하고, 정책의 출발점부터 장애인의 삶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왔음을 지적했다.
코로나19 시기의 장애인 확진·중증·사망 통계 부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접근 제한, 노인장기요양의 단절, 지역사회 건강관리 구조의 미비 등이 반복적으로 드러난 배제 사례로 언급되었으며, 이는 장애인이 공중보건 시스템 내부에서 기본값으로 고려되지 않은 결과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에 따라, 공중보건–의료–돌봄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장애인의 정책 참여를 제도화하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또한 지역사회 기반 건강관리, 장애인의 의료접근성 개선 등과 관련해 현행 제도가 실질적 변화를 견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장애인의 일상에 의료와 공중보건이 스며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정책적 방향성을 점검하고,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성을 갖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논의의 장이 되었다.
○ “보건의료정책 전 과정에서 장애인은 빠져 있다… 법·제도·거버넌스 전면 재검토 필요”
발제를 맡은 박종혁 이사장(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은 “보건의료정책의 전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분리되거나 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요양제도 등에서 “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욕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가 공중보건 영역에서도 반복돼 코로나19 시기 “장애유형·중증도별 발생·사망 통계가 전혀 생산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건의료 관련 법률 대부분에 장애인이 명시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는 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제도적 한계를 짚었다.
또한 정책결정 구조와 관련해 “국회, 복지부, 의료전문가 중심의 체계에서 장애인은 공식 참여자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장애(건강)영향평가를 도입하고, 보건의료 예산 중 일정 비율 장애인지예산으로 배분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장애인 진료 현실에 대해 “진료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기피가 발생하고 있어, 진료수가 가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대상에서 장애인이 반복적으로 제외되고 있다”며 공공의료기관의 책임 강화와 보건의료 거버넌스 개편을 촉구했다.
○ “간호간병·응급의료·감염병 대응 어디에도 장애인은 없다… 제도 밖에 놓인 현실”
토론에서는 박주석 정책실장(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현장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장애인은 의료체계 안에서 기본적인 환자로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응급상황에서도 지원주택 종사자가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아 무연고자 탈시설 장애인이 치료 동의를 받지 못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관련해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서비스 제공을 거부당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현실을 두고 “건강 분야 체계 안에 장애인의 자리가 없다. 장애인은 복지의 영역으로만 분류돼 의료체계에 포섭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환경이 장애인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지 않는 한 지역사회 기반 건강지원체계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장애계가 보건의료 거버넌스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존 의료전달체계 안에 장애인을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 중심 전달체계 안에 의료인이 참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표현을 인용하며, 의료체계 변화 논의의 중심에 장애 당사자가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장애인의 건강 개념과 의료 중심 관점의 간극이 정책 논의를 지연시키는 구조”
이찬우 정책위원장(한국척수장애인협회)은 “늘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이야기로 채택되지 않는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난 10년간 장애인건강권법을 둘러싼 논의가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현실을 문제로 짚었다. 그는 건강의 개념과 관련해 “장애인은 신체·정신·사회적 안녕을 함께 건강으로 본다”고 강조하며, 의료 중심 관점과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내부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전달체계와 관련해 “설계 과정에서 부처 간 조율 부족이 비효율을 낳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정책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이어 장애유형 통계의 세분화와 빅데이터 기반 연구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지역 장애인보건의료센터 등 현장에서 장애인 당사자 인력이 거의 없는 현실을 짚으며 정책 집행 구조 전반에서 당사자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보편적 서비스 안에서 장애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단절 해소 필요”
조윤화 연구위원(한국장애인개발원)은 “보편적인 정책과 서비스 내에서 장애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증장애인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연간 수천만 원의 간병비를 부담해야 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보편적 제도 안에서 장애가 충분히 포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분리통계가 법령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되지 않고 있다”며, 위기관리 매뉴얼을 검토하는 실무협의체에 “장애 관련 전문가와 당사자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이어 그는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의 운영 구조를 언급하며 “소속 구조에 따라 협력체계와 역할, 위상이 달라진다”고 지적하고, 보다 체계적인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지역사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동지원사 등 돌봄 인력이 일정 범위의 준의료적 처치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 “방향을 잡지 못한 장애인 건강정책 구조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근본 원인”
김소영 교수(충북대학교 의과대학)는 장애인건강권법 제정 이후 10년간 논의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로 “정책의 방향 자체가 장애인의 건강 개념과 맞닿아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종합계획에서 제시되는 과제와 분과 키워드가 여전히 의료 중심에 머물러 있어, 이동·의사소통·지역 격차·고령장애인 문제 등 장애인이 실제로 건강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 배제되거나 주변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 수립 과정과 관련해 분과 구성 방식의 한계를 짚으며, “위원장은 의료전문가 단독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와 공동으로 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건강정책의 방향 설정 단계부터 당사자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보접근성, 의사소통, 이동 등 공통 의제를 중심으로 “건강 분야에서도 단체별 이슈를 모아 하나의 물줄기를 만들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 “보건의료 시스템 전체를 재구성할 틀이 필요… 장애계 내부 거버넌스도 함께 구축해야”
최용준 교수(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는 이번 논의의 핵심을 “장애인의 건강을 치료·재활에 한정하지 않고 보건의료 전 과정에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라고 설명하며, 종합적 프레임워크 없이 과제만 나열돼 온 기존 접근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발제에서 제안된 거버넌스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좋은 거버넌스가 무엇인지보다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거버넌스는 규제, 예산, 지불제도, 정보, 서비스 등 보건의료 시스템의 전체 구성요소와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장애계 내부에서도 상시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공통 원칙을 만들어가는 내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장애인 건강정책 릴레이 간담회 등이 그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종합적 틀을 갖춘 장애계의 정책 포지션이 마련될 때 비로소 정부 정책과제와의 조율과 이행을 이끌어낼 동력이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 현장 녹화 영상은 한국장총 유튜브 채널(https://buly.kr/FWUAFMH)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한국장총은 앞으로도 장애인의 건강권이 공중보건 체계 안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보건의료 전달체계 개선과 장애포용적 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정책 활동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