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2 (일)

  • 흐림동두천 25.4℃
  • 흐림강릉 27.3℃
  • 흐림서울 27.2℃
  • 대전 24.8℃
  • 대구 26.7℃
  • 흐림울산 29.3℃
  • 광주 26.3℃
  • 흐림부산 29.7℃
  • 흐림고창 26.9℃
  • 제주 27.1℃
  • 흐림강화 26.4℃
  • 흐림보은 25.3℃
  • 흐림금산 25.2℃
  • 흐림강진군 25.7℃
  • 흐림경주시 27.9℃
  • 흐림거제 29.0℃
기상청 제공

전남

곡성군 제6회 조태일문학상에 박석준 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 수상

심사평 “‘삶의 현장’과 동의어의 시, 시가 가진 책무 돌아보게 만들었다”

 

[ 한국미디어뉴스 강성순 기자 ] 불의에 맞서 서슬 퍼런 언어로 정치모순과 사회현실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시인이자 자연과의 교감을 빼어난 서정시로 보여준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1941-1999)의 삶과 시 세계를 기리고, 한국문학의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시인을 찾고자 열린 '제6회 조태일문학상' 공모에서 박석준 시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푸른사상 간)가 선정됐다.

 

(사)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와 곡성군이 주최한 이번 공모에는 최근 2년 이내에 발간한 시집을 대상으로 지난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공모한 결과 143권이 접수됐으며,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2천만 원, 조태일 시인의 대표 시 '국토서시'를 새긴 고(故) 정병례 전각가의 전각 작품을 부상으로 시상한다.

 

시상식은 10월 19일 오후 3시 곡성조태일시문학기념관에서 열린다.

 

박석준 시인은 1958년 광주 출생이며,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의 파산, 대학교 1학년 때 남민전 사건에 관련된 형들의 수감, 너무 가볍고 허약한 몸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형들 사건 때문에 1983년에 안기부에게 각서를 쓰고 교사가 되었는데,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위해 해직을 선택했다.

 

1994년 복직하고 인생을 생각하다 쓴 '카페, 가난한 비'로 2008년 등단했다. 빚을 다 갚고 60세에 명예퇴직했다.

 

자서전 『내 시절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과 시집 『카페, 가난한 비』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발간했다.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는 한국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갖은 고통을 겪었던 한 개인의 가족사를 비롯해 음울한 도시의 풍경과 소시민의 삶이 형상화되어 있다.

 

시대적 수난 속에서 온몸에 새긴 삶의 감각과 절망의 노래에서 시인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응전 의식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음울한 세계를 담는 음울한 가락, 한껏 늘어져 있는 이 거친 어조들이 이 시대의 정신을 촉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심사위원회는 “박석준에게 ‘시’는 ‘삶의 현장’과 동의어이다.

 

가난하고 병약하고 상처투성이인 세계는 수식되지 않은 직설로 가득하다.

 

사건을 대상화하지도 않고 함부로 은유를 작동하지도 않는다.

 

존재의 굴곡 자체인 사건들로 울퉁불퉁한 그의 현장들은 우리에게 내던지는 질문과 동시에 진솔한 응답으로 뾰족뾰족하다.

 

‘의지’와 ‘표상’이라는 철학적 어휘는 그의 일상에서 갱도,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서 다시 수 킬로 갱도를 파고 들어가는 시커먼 손톱을 닮아있다.

 

음울한 세계를 담는 음울한 가락, 한껏 늘어져 있는 이 거친 어조들을 밀고 가는 정직한 슬픔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감옥 속에서 사는 우리를 다시 깨어나게 만드는 절망의 힘이니, 시가 가진 책무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예심에는 문동만(시인), 박소란(시인), 정민구(문학평론가), 본심에는 김사인(시인), 김수우(시인), 김형수(시인,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박석준 시인은 수상소감을 통해 “나는 예순 살에 일, 즉 교사 일을 떠났다. 그러고는 시 형식의 글을 써갔고, 예순다섯 살이 되었는데 10월 8일이 막 지나고 낮 공원에, 가을바람 불고 아침 비 내려서 떨어진 비에 젖은 나뭇잎이 나에게 제갈량을 생각게 하고 두 생각에 잠기게 했다. ‘꽃나무가 주는 자극보다는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더 짙은 마음을 쏟겠다.’라는. ‘하지만 세상살이 사람살이에서 나는 비애일지라도 현장에서 사라질 때까지 섬세하고 신중하게 살아가겠다.’라는. 병상에서 수상 소식을 듣고, 가슴속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새로운 것들이 흐르는 기분이 가득했다. 그러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어리둥절했다. 막냇동생을 포함하여 나를 뒷바라지한 사람들과 문학적 지향을 굳게 해주신, 또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신 문인들께 감사를 올린다.”라고 밝혔다.

 

조태일 시인은 곡성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고, 광주서중, 광주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고, 시집 『아침선박』 『식칼론』 『국토』 『자유가 시인더러』 『산속에서 꽃속에서』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등을 펴냈다.

 

1969년 《시인》지를 창간한 이래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박남준 시인 등을 발굴했다.

 

1980년 신군부가 계엄령 전국 확대에 앞서 감금한 예비 검속자에 포함돼 수감생활을 하는 등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앞장선 대표적인 민족 ·민중시인이다.

 

1989년부터 광주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1999년 9월 7일 간암으로 작고했다.

 

편운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